'음악캠프' 5000회 넘긴 배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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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앤스타작성일04-04-02 10:10 조회83,9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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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배철수는 기타를 메고 무대를 휘젓는 ‘인기 록커(Rocker)’였다.
밴드 ‘송골매’의 리더가 그의 자리였다. 쇳소리 나는 컬컬한 목소리가 빚어내는 노래도 인상적이었지만, 비쩍 마른 체구와 정돈되지 않은 외모에서 우러나는 소박한 진정성이 그를 더욱 빛나게 했다.
2004년 4월, 배철수가 세상과 소통하는 공간은 거친 무대가 아니라, 7평 남짓한 라디오 스튜디오다.
햇수로 15년째, MBC FM(91.9㎒)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통해 팝음악을 소개하는 그는 여전히 걸쭉하고 또 그만큼 진실하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뮤지션’이 아닌, ‘팝음악 전문 DJ’로 각인된 배철수의 방송진행이 5000회를 넘겼다.
지난 1월 말 ‘기념일’을 무심코 지나친 그와 제작진은 5월에 대대적인 ‘5000회 돌파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배철수를 아끼는 후배 뮤지션과 팬들이 어우러진, 한마당 축제가 될 것이란다.
생방송 진행을 1시간 앞둔 그를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헐렁한 남색 스웨터에 청바지 그리고 잿빛 콧수염, 한쪽 벽에 붙어있는 대형사진 속 모양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채였다.
“첫 방송이 90년 3월 19일이었죠. 음악생활에 지쳐 있을 때였어요. 한 1년만, 잠시 쉰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방송이 음악보다 훨씬 재밌더군요. 젊은 시절, 무대 위에서 여학생들 환호받으며 노래하던 그 기분이었죠. 헤헤.”
그는 ‘천직(天職)’이라고 여기고 있는 DJ로서 자부심이 대단했다.
“현재 가요계에 등장하는 제대로 된 작사·작곡가, 제작자들이 대부분 팝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인데, ‘음악캠프’가 그들에게 새 음악을 전해주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또렷하게 말했다.
그가 전파에 실어보내는, 한마디 한마디는 대부분 그의 머릿속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다. 이날도 “취업준비를 하며 코피를 흘렸다”는 청취자 사연을 소개하며, “코피까지 흘렸으면 끝난 거예요. 싸움도 코피 나면 끝나잖아요”라고 말하고는 털털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그에게 “당신 방송을 빼놓지 않고 들었다” “청소년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당신이다”라는 등의 애청자 반응은 훈장이자 굴레다.
“저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몇 년 전 제가 방송에서 한 얘기가 너무 감동적이라 수첩에 적어놓고 매일 본다는 사람도 있어요.
겁 나죠. 제 ‘개똥철학’이 특히 감수성 예민한 젊은 친구들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5000회를 맞은 심정을 물었다.
담담한 대답이 돌아온다.
“5000회 했으니까 이제 1만회까지 해야지 이런 생각은 없어요. 그동안 즐겁게 잘 살았고, 언제가 됐든 ‘저 친구 멋있게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때, 물러나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해요.”
투박한 배철수 목소리의 활동 반경이 라디오를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 MBC TV ‘포토에세이 사람’ 등 각종 교양 프로그램 내레이터로 맹활약하며, 곧잘 CF에도 등장한다.
그는 “줄잡아 100편 이상의 프로그램에서 내레이션을 맡았었던 것 같다”며 “드라이한 목소리가 제3자적 입장을 전달하는 데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욕심 없이 재미있게 살자”는 인생관이 그를 영원한 ‘프리랜서’로 남게 하는 것 같았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첫 번째 연출자였던 박혜영(43) MBC라디오국 제작위원과 부부의 연을 맺은 것도 인생을 대하는 비슷한 태도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 사이에는 이제 12세, 7세 된 두 아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요즘 어떤 음악을 듣느냐?”고 묻자, 에미넴·아웃캐스트 같은 힙합 뮤지션들 이름이 줄줄 흘러나왔고, 이내 국내 대중음악판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옛날에는 록을 좋아했지만 요즘은 독창적인 친구들은 다 좋아요. 그런데 뭐가 유행한다고 하면 우르르 한쪽으로 몰려가는 우리나라 상황을 보고 있으면 좀 답답해요.”
이날 스튜디오에는 최근 기타 연주 앨범을 내고 방한한, 일본의 뮤지션 호테이 도모야쓰가 7시부터 40분여간 ‘초대손님’으로 그의 곁을 지켰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도중, 도모야쓰가 던진 한마디에, 멋쩍은 웃음과 반짝이는 눈빛이 묘하게 그의 얼굴에 교차했다.
“당신 또한 한국의 유명한 뮤지션이었다고 들었는데, 기타 2개만 있으면 같이 세션(연주)을 해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밴드 ‘송골매’의 리더가 그의 자리였다. 쇳소리 나는 컬컬한 목소리가 빚어내는 노래도 인상적이었지만, 비쩍 마른 체구와 정돈되지 않은 외모에서 우러나는 소박한 진정성이 그를 더욱 빛나게 했다.
2004년 4월, 배철수가 세상과 소통하는 공간은 거친 무대가 아니라, 7평 남짓한 라디오 스튜디오다.
햇수로 15년째, MBC FM(91.9㎒)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통해 팝음악을 소개하는 그는 여전히 걸쭉하고 또 그만큼 진실하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뮤지션’이 아닌, ‘팝음악 전문 DJ’로 각인된 배철수의 방송진행이 5000회를 넘겼다.
지난 1월 말 ‘기념일’을 무심코 지나친 그와 제작진은 5월에 대대적인 ‘5000회 돌파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배철수를 아끼는 후배 뮤지션과 팬들이 어우러진, 한마당 축제가 될 것이란다.
생방송 진행을 1시간 앞둔 그를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헐렁한 남색 스웨터에 청바지 그리고 잿빛 콧수염, 한쪽 벽에 붙어있는 대형사진 속 모양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채였다.
“첫 방송이 90년 3월 19일이었죠. 음악생활에 지쳐 있을 때였어요. 한 1년만, 잠시 쉰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방송이 음악보다 훨씬 재밌더군요. 젊은 시절, 무대 위에서 여학생들 환호받으며 노래하던 그 기분이었죠. 헤헤.”
그는 ‘천직(天職)’이라고 여기고 있는 DJ로서 자부심이 대단했다.
“현재 가요계에 등장하는 제대로 된 작사·작곡가, 제작자들이 대부분 팝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인데, ‘음악캠프’가 그들에게 새 음악을 전해주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또렷하게 말했다.
그가 전파에 실어보내는, 한마디 한마디는 대부분 그의 머릿속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다. 이날도 “취업준비를 하며 코피를 흘렸다”는 청취자 사연을 소개하며, “코피까지 흘렸으면 끝난 거예요. 싸움도 코피 나면 끝나잖아요”라고 말하고는 털털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그에게 “당신 방송을 빼놓지 않고 들었다” “청소년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당신이다”라는 등의 애청자 반응은 훈장이자 굴레다.
“저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몇 년 전 제가 방송에서 한 얘기가 너무 감동적이라 수첩에 적어놓고 매일 본다는 사람도 있어요.
겁 나죠. 제 ‘개똥철학’이 특히 감수성 예민한 젊은 친구들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5000회를 맞은 심정을 물었다.
담담한 대답이 돌아온다.
“5000회 했으니까 이제 1만회까지 해야지 이런 생각은 없어요. 그동안 즐겁게 잘 살았고, 언제가 됐든 ‘저 친구 멋있게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때, 물러나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해요.”
투박한 배철수 목소리의 활동 반경이 라디오를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 MBC TV ‘포토에세이 사람’ 등 각종 교양 프로그램 내레이터로 맹활약하며, 곧잘 CF에도 등장한다.
그는 “줄잡아 100편 이상의 프로그램에서 내레이션을 맡았었던 것 같다”며 “드라이한 목소리가 제3자적 입장을 전달하는 데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욕심 없이 재미있게 살자”는 인생관이 그를 영원한 ‘프리랜서’로 남게 하는 것 같았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첫 번째 연출자였던 박혜영(43) MBC라디오국 제작위원과 부부의 연을 맺은 것도 인생을 대하는 비슷한 태도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 사이에는 이제 12세, 7세 된 두 아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요즘 어떤 음악을 듣느냐?”고 묻자, 에미넴·아웃캐스트 같은 힙합 뮤지션들 이름이 줄줄 흘러나왔고, 이내 국내 대중음악판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옛날에는 록을 좋아했지만 요즘은 독창적인 친구들은 다 좋아요. 그런데 뭐가 유행한다고 하면 우르르 한쪽으로 몰려가는 우리나라 상황을 보고 있으면 좀 답답해요.”
이날 스튜디오에는 최근 기타 연주 앨범을 내고 방한한, 일본의 뮤지션 호테이 도모야쓰가 7시부터 40분여간 ‘초대손님’으로 그의 곁을 지켰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도중, 도모야쓰가 던진 한마디에, 멋쩍은 웃음과 반짝이는 눈빛이 묘하게 그의 얼굴에 교차했다.
“당신 또한 한국의 유명한 뮤지션이었다고 들었는데, 기타 2개만 있으면 같이 세션(연주)을 해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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